1) 여경래 셰프에 대해서 알아보죠!
출생
1960년 7월 4일 (64세)
고향 출생지
경기도 수원시
국적
대만
가족관계
아내/부인 이수화(1965년생)
장남 여민(1990년생)
차남 여융(1991년생)
남동생 여경옥
소속
홍보각 (총괄오너셰프)
2) 안타까운 그의 아버지의 사연
"6살 내 앞에서 차에 치여 돌아가신 父" 여경래 셰프,과거의 아픔
-2022. 11. 11.
대한민국 대표 중식 대가 여경래 셰프가 안타까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털어놓았다.
11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는 여경래, 여경옥 형제 셰프의 고민이 공개됐던 것입니다.
형제의 중식 경력을 합치면 93년, 명불허전 중식계 대가 형제인 여경래 여경옥 형제가 찾아왔다. 화교 출신 형제 셰프는 호탕하게 웃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중식 명장에 정형돈은 "다만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다"며 "중화요리계의 거목이다"라고 소개했다.
동생인 여경옥 셰프는 35년간 청와대 출장 대통령 식사 담당을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여경옥 셰프는 24년 간 S호텔 수석 셰프로 근무하기도 했다. 조리직으로는 업계 최초, K호텔 이사로도 일했답니다.
오직 '금쪽상담소'를 위해 형제가 직접 요리를 해주기로 했다. 45년차와 48년차의 요리, 여경옥 셰프는 "오늘은 제가 보조다. 모자새우는 형한테 정말로 안된다"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새우의 맛에 모두 '진실의 미간'을 보였다.
여경래 여경옥 셰프의 제자 박은영은 자기가 제보를 했다며 "항상 긍정적이시다. 받아야 할 돈도 못받는다"라며 '긍정적이다 못해 호구 같은 형제'에 대해 인터뷰 했다. 여경래 셰프는 "20대에 호텔에서 서비스 교육을 받는데 항공사 승무원에게 받았다. 원래 성격은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문득 거울을 보고 '헐' 소리가 나오더라. '더러운 인상으로 세상을 살고 있었구나' 싶었던 것이다. 인상을 바꾸고자 결심한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웃는 연습을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여경래 셰프는 "사람들 있는데서 웃는 게 힘들더라. 처음엔 어려웠던 것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3년을 노력했다"라 회상했답니다.
여경래는 "어릴 때 제가 잘못해서 어머니께 맞고 있으면 '형이 잘못한 건 나 때문이다'라고 감싸줬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은 거 같다"라 했고 여경옥은 "제가 그렇게 하면 어머니가 마음이 아파서 더 못때리시지 않냐"라며 끈끈한 형제애를 보였다. 오은영 박사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형제의 우애.
박은영 셰프는 "설 연휴 끝나고 호텔에 출근했는데 불이 났던 거다. 하루아침에 가게 문을 닫게 됐다"며 15년간 운영했던 레스토랑. 1억 원어치 물건들을 단돈 100만 원에 처분해버린 형제에 대해 언급했다. 덮어버린 일을 계속 얘기하면서 미련을 보이기도 했다.
오은영 박사는 좋았던 기억만 추억하는 '므두셀라 증후군'에 "살면서 어린 시절에는 다 힘든 게 있다. 므무셀라 증후군이 있으면 그 시절을 미화한다"며 형제의 어린시절에 대해 물었습니다.
여경래 셰프는 "어린시절 '극빈자 가족'이었다. 심각하게 가난했다. 제가 6살, 동생이 3살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는데 당시 막걸리 장사를 하셨다. 동생과 저는 먹을 게 없어서 막걸리에 설탕을 넣어 마시기도 했다"라 말문을 열었다.
화교학교는 학비를 내야 했지만 낼 수가 없었고 잡비조차 못 냈다고. 여경래는 "여름 교복을 입어야 하는데 사줄 돈이 없어서 저 혼자만 사복을 입고 등교했다. 담임선생님이 제 사정을 알고 반 친구들의 도움으로 여름교복을 사주셨다. 철 없는 시절에 어머니께 자랑을 했었던 것이다"라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