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조용필의 존재는 신화였다. 지금도 '전설' '가왕' '가요계의 살아있는 역사'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당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비밀 결혼을 감행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
84년 3월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남서울호텔 커피숍에 사전 약속된 몇몇 연예기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조용필이 기자들과 악수를 다 끝내기도 전에 약혼녀 박지숙씨가 도착했다. 그녀는 기자들에 둘러싸인 조용필을 보고는 '무슨 일로 갑자기 자신을 불렀는지' 영문을 몰라하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했다.
드디어 조용필이 말문을 열었다. "연락드린 분들이 다 모인 것같으니 지금 바로 결혼식장으로 갑시다." 헉, 결혼식이라니? 깜짝 결혼발표 쯤으로 예상했던 기자들 조차 '악 소리'가 나는 충격발언이었습니다.
일행이 3대의 승용차를 나눠타고 1시간 넘게 달려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군 광릉수목원 근처의 봉선사. 그 유명한 '조용필의 산사 극비결혼' 현장이다
한편 조용필의 결혼은 처음부터 극비에 진행됐다. 결혼 사실은 조용필과 매니저만 알고 있었을 뿐 신부가 될 박지숙씨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결혼장소도 전날 밤 11시에야 최종 결정됐습니다.
봉선사 주지스님이었던 월운스님이 주례를 맡고 하객은 동행한 기자들이 전부였다. 결혼예물은 각자 끼고 있던 시계를 풀어 다시 채워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 결혼식은 훗날 '절에서 찬물 한그릇 떠놓고 결혼했다'는 유명한 일화로 기억돼 있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 조용필, 박지숙을 아내로 맞다.' 결혼사실이 세상에 공표되자 팬들의 축하와 탄식이 동시에 쏟아졌다. 비밀 결혼식이다보니 온갖 의문과 추측도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조용필이 어디서 결혼식을 하든 '오빠부대'의 등쌀을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유일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랍니다.
조용필에 이어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또 하나의 결혼사건이 있었다. 1991년 6월6일 그룹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이 13살 연하의 수영선수 최윤희와 결혼했답니다.
최윤희는 요즘으로 치면 피겨요정 김연아 못지않은 국민적 인기를 누린 '아시아 인어'. 이 때문에 아무도 몰래 산사에서 최윤희와 결혼해버린 유현상은 이후 팬들의 지탄과 원성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어떤 방송사 PD는 그의 디스크를 집어던지며 "앞으로 유현상 노래는 정말로 절대 틀지마"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일화도 있답니다.
두 사람은 6개월 가량 남몰래 데이트를 하며 애정을 싹틔웠던 것으로 후에 알려졌지만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에 정상적인 결혼은 불가능했다. 특히 최윤희의 엄마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끝내 두 사람을 인정하지 않을 만큼 단호했다.
한편 유현상이 쓴 자서전 '꿈을 향해 소리쳐'에는 당시 심경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세상에 양가의 축복 없이 비밀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나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윤희와 손을 잡고 축복을 받으며 식장을 걸어나오는 모습을 수없이 그려봤다. 하지만 그것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라고 전했습니다.
유현상은 최윤희와의 결혼을 위해 당시 연예기자로 명성을 날리던 L모 기자의 도움을 받았다. 장소 물색과 몇 안되는 하객도 모두 L기자가 정했다. 이 바람에 유현상은 결혼 당일 오전까지도 식장을 몰랐다고 한다.
조용필의 결혼과 유현상의 결혼은 둘다 극비로 치러진 의외성 때문에 더 화제가 됐다. 공교롭게도 경기도 남양주 광릉 소재의 봉선사였다. 같은 장소에서 조용필이 결혼한지 꼭 7년여만이다. 사찰이라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도 3.1절과 현충일이라는 공휴일 등은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주례는 주지스님이 출타중이어서 혜등 스님이 했고 하객은 가수 이승철, 이호연 사장(현 DSP 대표), 백민 사장(현 BIG엔터테인먼트 대표), 작곡가 하광훈 등이 전부였다. 결혼은 불과 20분만에 끝이 났답니다.
유현상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인근 베어스타운 스키장 음식점에서 간단히 피로연을 가진 뒤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면서 "동해안을 거쳐 부산 광안리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지만 돌아온 뒤엔 팬들의 싸늘한 시선과 가족들의 외면으로 힘든 날을 보내야 했다"고 털어놨답니다.